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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인 파슨스 영화 <백룸> 리뷰

니라잡채양념 2026. 5. 31. 18:18

 영화 <백룸>을 봤다. 공포 영화는 오랜만에 보는 것 같다. 백룸이라는 콘셉트 자체가 시각적 경험에 기반을 둔 것이니까 영상미는 당연히 아름다울 것이라고 예상했고 그 기대가 들어맞았던 반면 각본은 전혀 기대하지 않았는데 생각보다 기승전결의 구성이 탁월해서 놀랐다. 스토리상의 큰 줄기랄 것이 없으니 중간 부분이야 무엇으로 채우든 상관없는 영화였지만 여기에서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싶은 지점에서 시작하고 여기에서 끝나야 하지 않을까 싶은 지점에서 끝나서 좋았다. 마지막 장면의 영상미와 엔딩 크레딧에서 흘러나오는 매혹적인 음악이 모든 것을 미화시킨다......

 접은글 안에는 영화의 줄거리와 내용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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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룸>은 트라우마가 있는 정신의학자 메리와 알코올 의존으로 어려움을 겪는 가구점 사장 클락, 두 사람의 체험담을 중심으로 하는 더블 주인공 구성이다. 영화가 시작하기 전에 어느 단역 연구원이 촬영한 푸티지 호러 필름이 2~3분 정도 삽입되어 있는데다 메리의 아역이 나오는 회상 씬도 잠깐 등장하기 때문에 정확한 주인공이 누구인지를 알아채고 따라가기 시작하는 시점이 좀 늦어지게 된다. 본격적인 스토리로의 진입을 알리는 도입부는 메리와 클락의 상담 장면이다. 메리는 클락이 제대로 된 인간관계를 맺지 않으며 그의 삶이 반복되는 루틴에 갇혀 있다는 것을 짚어 준 후 그가 아내와 이혼한 날의 경험을 재현하는 역할극 심리치료 기법을 제안한다. 그러나 클락이 화를 참지 못하고 아내 역할을 하는 메리에게 고성을 지르는 바람에 상담 세션은 좋지 않은 분위기에서 끝을 맺는다.

 이후 클락은 자신의 가구 판매점으로 돌아와 직원들의 도움을 받아서 자신의 가구점을 선전하는 TV 광고를 녹화하려고 한다. 이 광고 영상은 억지스러우며 마지막에는 NG까지 발생한다. 프롭으로 사용했던 의자가 부서진 것이다. 클락의 직원 보비는 광고의 컨셉이 해적인지 술탄인지 모르겠다고 구시렁거리다가 클락에게 눈총을 받는다. 그러나 당연하게도 이 두 가지 컨셉은 서로 충돌하지 않는다. 클락의 가구점이 모티프로 하는 술탄국 오스만 제국은 숱한 정복 전쟁으로 영토를 확장하여 유럽의 심장이었던 로마를 멸망시킨 것으로 유명하다. "It's a Steal!" 가구점에 걸려 있는 광고 문구다. 여행자이자 침략자이며 정복자이고 이방인이라는 점에서 오스만의 지배자는 해적과 다를 바 없는 존재다. 영화가 상징을 활용하는 방식은 초반부터 이처럼 직관적이다. 우리가 아는 백룸이 인간의 이해의 영역 밖에 있는 실체라는 개념에서 출발한다는 점과 상반된다.

 클락의 가구점 운영은 순탄치 않아 보인다. 그는 자신이 찍은 영상과 달리 매끄럽고 컨셉에 충실한 경쟁사의 광고를 TV로 보며 분노를 삼키고, 엄청난 전기요금과 툭하면 일어나는 정전 문제를 해결하고자 수리 기사를 부른다. 이때 클락이 알게 된 것은 차단기에 어디로 연결되어 있는지 알 수 없는 전기 스위치가 달려 있으며 여기에 연결된 무엇인가가 지나친 전력 소모의 원인일 수 있다는 것이다. '그가 미처 자각하지 못하는 사이 그에게 들러붙어 그의 에너지를 갉아먹고 있는 것'의 정체는 무엇이란 말인가. 점내에서 계속된 원인불명의 정전에 완전히 진력이 난 클락은 '어느 불면의 밤'에 그것을 제대로 탐구해야겠다고 결심하고 가구점을 탐사하다가 '백룸'의 출입구를 발견한다. 이 출입구는 신기하게도 여타의 공포물에서처럼 진입 이후 사라져 탐색자를 공황에 빠뜨리지 않는다. 언제나 그곳에 있으며, '원하기만 한다면 누구나 드나들 수 있다'. 하지만 이공간에 너무 깊이 빠져들어 '한번 길을 잃으면 나오기 쉽지 않다'. 묘사 하나하나가 영화 속의 백룸이 인간의 내면이나 무의식과 상통한다고 노골적으로 외치고 있다. 그래서인지 클락은 자신의 가구점 지하에 엄청난 규모의 비밀 방이 도사리고 있는 초유의 사태에도 별 망설임 없이 공포영화 주연의 본분을 지키며 백룸의 내부를 적극적으로 탐사한다. 그런데 여기에서 기이한 부분은 그가 시종일관 누군가를 찾는다는 점이다. 클락이 들어가는 방들 중 어디에도 사람이 살고 있을 것 같은 흔적은 보이지 않으며 볼품없는 잡동사니가 가득 엉켜 있을 뿐인데 그는 방과 방 사이를 헤매 다니며 여기 사람 있냐고 불러댄다. 실체 없는 검은 그림자 괴물이 배회하는 인기척을 느끼자마자 아무것도 하지 않고 출구를 찾아 달려나갈 거면서 말이다.

 백룸에서 나온 클락이 가장 먼저 하는 일은 백룸 안에서와 마찬가지로 사람을 찾는 것이다. 그는 우선 메리를 찾아가 자신의 경험을 설명하고, 메리가 자신을 믿어주지 않는다고 의심하자마자 화를 내며 증거를 가져오겠다고 떠나 버린다. 다음으로 그는 탐사를 도와달라고 가구점 직원 캣과 보비를 집에서 끌어낸다. 이 장면에도 약간의 위화감은 존재한다. 세계의 비현실적인 이면을 처음 마주하는 클락 같은 주인공은 통상 자신의 모험담을 남들에게 이해시키려 '이런 소리를 들으면 당신은 제가 미쳤다고 생각하시겠지만……' 등의 대사로 운을 뗀다. 그러나 클락은 자신의 말을 남들이 상식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으리라는 걸 잘 알아야 할 텐데도 다짜고짜 믿기 힘든 경험을 타인 앞에 들이대기만 한다. 백룸의 존재를 꺼리고 두려워하기는 하지만 곧바로 납득할 수 있었던 것은 그곳이 클락의 집이며, 클락의 소유물이기 때문일까? 간단한 탐사만으로 쉽게 백룸의 지도를 그려낸 뒤, 하필이면 정신의학자에게 이토록 사적이고 폭력적인 공간을 거리낌없이 열어 보여준 뒤 그 내용물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여 달라고 강요하는 것은 그가 자기 무의식을 설계한 건축가이기 때문일까?

 다시 영화 도입부의 상담 장면으로 돌아가자. 메리는 클락에게 당신이 혼자라고 말한다. 클락은 자신이 타인에게 위험을 가져다준다고 실토한 후, 지금도 몇몇 사람들과 교류하고 있으며 외로움을 느끼지 않는다고 대꾸하지만, 메리는 외로움을 느끼지 않는 것과 혼자인 것은 다르다는 것을 지적한다. 다른 사람들을 백룸으로 끌어들이는 시점에서야 클락은 이 말의 의미를 이해했을지도 모른다. 몇 개의 익숙한 공간을 거치고 나서 그는 그가 다름 아닌 자기 자신의 내면에 진입했다는 것을 쉽게 알아차릴 수 있었을 것이며, 끝도 없이 이어지는 장소들 사이에서 조력을 구할 사람이라고는 한 명도 발견하지 못하고 단지 실체 없는 불안만을 마주했을 때 그는 비로소 자기 내면 세계의 자폐성을 실감했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그 안에 누군가를 들이지만, 자기 자신의 최초 발견자가 그 자신임에도 그는 스스로를 해설하기를 완강히 거부하며 오히려 타인이 주도성을 가지고 자신을 탐색하기를 요구한다. 그러나 클락이 끌고 온 캣과 보비는 세계의 폭력성을 견디지 못하고 사라진다. 보비는 괴물에게 끌려가 핏자국을 남기고 실종되며 캣은 그 괴물을 피하기 위해 백룸 사이를 헤매다 클락을 발견하고 숨겨달라고 절규하지만, 이상하게도 클락의 눈에는 캣이 보이지 않는다. 기이하게도 캣의 눈에는 클락이 있는 공간이 통유리처럼 비쳐 보이는 반면 클락의 눈에는 막힌 벽밖에 들어오지 않았던 것이다. 결국 노란 벽지 위를 하릴없이 더듬던 클락은 등 뒤에서 기어오던 괴물과 눈이 마주치고 만다.

 클락의 실종 이후, 메리는 클락의 행방을 알아내기 위해 차를 몰고 그의 가구점으로 향한다. 영화를 이끌어나가는 주된 인물이 클락에서 메리로 옮겨가는 이 시점은 영화의 전반부와 후반부를 가른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최근 심리치료 서적을 펴낸 메리는 저서를 선전하는 광고에서 인간의 내면을 방에 비유하여 묘사하면서 마음의 창문을 열어 보라고 권유한다. 그런 메리의 어머니에게는 정신병력이 있다. 그녀는 창문을 열면 누군가가 침입할지도 모른다는 공포에 빠져 메리를 밖에 나가지 못하게 가둬 키운다. 메리가 살던 옛 집이 허물어질 때 그녀는 어머니와 나란히 양손을 콘크리트에 새겨 손자국을 만들었다. 그 손자국은 단단해져 도로에 남았다. 추후 공사를 틈타 가져온 것인지, 손자국이 남은 콘크리트 덩어리 일부는 메리의 자택에 보관되어 있다. 덩어리에 단단하게 새겨진 손자국을 응시할 때 메리는 가끔 어린 시절로 되돌아간다.

 클락이 백룸의 존재에 대해 처음 설명했을 때 메리는 몹시 불안정해 보인다. 클락은 그녀가 자신의 이야기를 믿지 않는다고 단정짓지만, 그 생각과 달리 메리는 처음부터 백룸에 대해 무언가를 알고 있거나 적어도 짐작하는 듯하다. 메리는 어머니의 내면을 제대로 들여다보지 못한 것 같다. 회상 속에서 그녀는 어머니를 관찰하거나 응시하기만 하고 어머니에게 한마디도 하지 못한다. 그녀는 당시 어머니의 내면이 공포와 망상이 엉켜 지저분한 방 같은 상태였다는 것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어쩌면 그녀의 어머니도 백룸에 방문한 적 있었을지 모른다.

 백룸을 헤매던 메리는 직전 장면에서 괴물을 만난 후 행적이 묘연하던 클락과 재회한다. 그러나 클락은 정신이 조금 이상해진 것처럼 기묘한 반응을 하다가 메리를 납치해서 식당 같은 공간으로 데려간다. 이공간의 둥근 테이블에는 사람은 없고 이목구비가 기괴하게 비틀린 인형 같은 것들이 둘러앉아 있을 뿐이다. 클락은 그의 자기중심적이고 자폐적인 성격을 다시 한번 강조해 주는 대사 몇 마디를 내뱉고 메리에게 자기 앞에 앉아 자신의 아내를 연기하며 자신이 듣고 싶은 말을 해달라고 요구한다.

 혹자는 이 장면에서 사건 해결의 실마리를 읽을 것이다. 만약 백룸이 인간 내면의 투영이라면 백룸에서 탈출하기 위해서는 테라피 계통의 해결책이 필요하리라고 짐작할 만하기 때문이다. 이 영화가 <인사이드 아웃>이었으면 이쯤에서 메리가 응원이나 위로의 명대사를 줄줄 내뱉고 답답한 노란 방들은 창문이 달린 핑크빛 드림 하우스로 바뀌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영화는 공포 영화의 문법대로 전개된다. 클락의 행동에 어지간히 질린 메리는 너는 매사에 남 탓 하는 버릇을 고치지 않을 것이며 이 공간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고 변화하지도 못할 것이며 계속 똑같이 살 것이라고 일갈한다. 클락이 자신은 변화하고 싶지 않다고 하자, 메리는 그러라고 쏘아붙인다. 그 순간 해적 선장 차림새의 클락처럼 생긴 괴물이 나타나 진짜 클락을 죽여버리고 메리를 추격하기 시작한다.

 이건 여러모로 혼란스러운 장면이다. 일단 해적 선장 차림새의 괴물 같은 건 백룸과 어울리지 않으며, 백룸을 클락의 내면 세계로 이해한다면 백룸의 설계자이자 건축가인 클락이 어째서 백룸에서 비롯된 괴물에 잡아먹혔는지 설명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변화하고 싶지 않다는 클락의 대사가 일종의 직면을 통한 내적 성장을 뜻하며, 주인공이 성장하는 바람에 그의 악하고 파괴적인 일면을 상징하는 괴물이 그를 응징한 것일까? 아니면 그의 대사가 완전한 자멸을 선언한 것이고, 그 때문에 클락의 자아는 끝내 백룸에 잡아먹히고 만 것일까? 어느 쪽인지에 따라 영화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극명하게 갈리게 될 텐데도 뒤이은 점프스캐어 씬과 추격전, 육탄전 등은 무섭기만 할 뿐 아무런 해답을 제공해 주지 않는다. 이후의 장면들은 메리가 해적 선장에게 쫓기는 과정으로 이루어져 있다. 끝내 선장을 따돌린 메리는 피투성이 몰골을 한 채 간신히 백룸을 연구하는 조사원들에게 발견되어 구조받는다.

 이후, 메리는 연구원 필과 마주 앉는다. 필은 오랫동안 백룸에 대해 조사해 왔으며 메리에게서도 백룸에 대한 정보를 얻어내려 애를 쓴다. 그는 이 연구가 어쩌면 인류 역사상 가장 가치 있는 활동일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이때에는 백룸과 인간의 내면을 연결하는 영화 오리지널 설정 대신 백룸의 원래 개념이 수면 위로 부상하게 된다. 이 설정에 따라 백룸은 클락의 내면 세계를 어느 정도 빌려왔을 수는 있지만 그의 내면 세계로 완전히 환원될 수는 없다. 클락 같은 지루한 남자의 자아를 탐구하는 것이 인류의 사명일 수는 없지 않겠는가? 그렇다고 인간의 집단적 무의식의 구현이 곧 백룸이라고 설명하는 것도 무리가 있다. 그랬다면 연구자로서 필이 메리에게 가장 먼저 물어보았어야 할 것은 백룸의 진입 경로가 아니라 메리가 탐험한 방들이 어떤 사람과 관련된 방인가 하는 점이었으리라. 그러나 백룸 연구 기관에서는 클락이 어떤 사람인지를 알고 싶어하기는커녕, 클락이 백룸 진입에 성공한 것을 일찌감치 알고 있었음에도 그의 신상 정보를 입수하려는 시도조차 해보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필이 메리에게 클락에 관해 물을 때 그의 이름이 아닌 사진을 바탕으로 질문했다는 것이 그 증거다.

 그러므로 영화에서 묘사된 것은 백룸의 지극히 단편적인 일면에 불과할 수밖에 없다. 설정상 백룸은 인간의 생멸과 무관하게 세계에 처음부터 존재해 온 완전한 미지의 영역, 숱한 탐구를 통해서도 결코 만족스럽게 규명되지 않았던 정체불명의 실체다. 어째서 영화에 등장했던 몇몇 방이 클락의 내면 세계를 닮아 있었는지에 대해서조차 영화는 명쾌하게 해설하지 않는다. 게다가 해적 차림의 괴물은 클락 자신의 에고나 욕망에서 비롯되었다기에는 클락 자신과 지나치게 불화한다. 초반부에서 해적 분장을 하고 광고를 찍는 클락은 외다리 선장을 연기하기 위해 멀쩡히 다리가 달린 무릎 위에 의족을 붙이고 우스꽝스럽게 걸으며 안쓰러울 정도로 숨을 헐떡인다. 구태여 상징적으로 해석하자면 그것은 의도적으로 자신의 가능성을 제한하며 스스로를 불구로 만들어 온 클락의 지난 삶을 뜻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클락이 자신이 지나온 삶을 벗어던지고 나아가는 대신 그 속에 눌러앉고 싶어한다면 그의 어두운 자아가 분열되어 그를 살해하고 싶어할 이유는 없어 보인다. 무엇이 클락을 죽인 걸까? 무엇이 메리를 위협한 걸까? 그것은 클락 자신으로부터 비롯되었을까? 혹은 백룸을 이루는 어떤 불가해한 미지의 법칙이 괴물을 생산해낸 걸까? 영화를 체호프의 총포상으로 만들겠다는 듯 모든 상징물을 노골적으로 활용하던 전반부에서와 달리 이 괴물의 정체에 대해서만큼은 명확한 답을 내리기 어렵다. 하지만 사실 그 점이 괴물의 등장을 허락한다. 백룸은 알 수 없는 세계이며, 괴물은 원본을 죽이고 살아남아 새로운 원본이 된 정체불명의 복제품이다. 그런 괴물이라면 나름대로 오리지널 백룸의 정신과 부합하지 않을까.

 필은 백룸에 대해 조금이라도 더 많은 지식을 얻는 것을 인생의 과제로 삼는다. 관객은 필의 과제를 수행하는 데 도움을 줄 수많은 단서를 수집했다. 하지만 현상을 규명하려면 인과가 필요한데, 우리가 가지고 있는 어떤 단서도 인과 관계를 암시하지 않는다. 백룸이 우리를 모방하는가, 우리 이전에 백룸이 있었는가. 영화 마지막에 등장하는 메리의 기억 속 소품들은 언제부터 백룸에 존재해 왔던 것일까. 우리는 백룸을 매개로 우리 자신의 내면에 들어가는 것일까, 아니면 우리의 내면이 처음부터 심리물이 아닌 실재물로서 세계 어딘가를 점유하고 있었던 것일까. 우리는 의식 세계의 주인이 우리 자신이라고 믿지만, 사실 우리는 결코 그 세계를 정복하지 못하며 속수무책으로 끌려다니고 잡아먹힌다. 우리의 내면 세계는 반짝 나타났다 사라지는 전기 신호의 집합체라고 믿지만, 그것은 악취 나는 빨래 더미와 뒤엉킨 가구의 형상을 하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으며 그중 일부는 우리의 손에 들려 현실로 끌려나온다. 아니, 우리의 내면 세계에 대한 앎이 과연 백룸의 법칙을 설명해 주기는 할까? 건축가인 클락의 눈에 백룸은 장소로만 보인다. 그것은 방과 통로, 경사로와 문으로 구성된 거대한 설계물이다. 메리의 시선이 틈입한 뒤에야 백룸은 한 남자의 불안한 내면이 되었으며, 뒤이어 메리 자신의 내면이 되었다. 필의 연구에서 백룸이 무엇인지 우리는 배우지 못했다. 그가 대답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이렇듯 보는 사람에 따라 백룸의 의미가 달라지므로, 이 영화가 백룸이라는 세계를 어떤 식으로든 해설해 준다고 판단하는 것은 섣부른 일이다. 백룸은 인간의 지식 체계과 가치 체계 바깥에 있다. 그래서 클락은 백룸으로 침잠한다. 그는 백룸에 머무르는 이상 더 이상 변화할 필요가 없고 그저 존재하기만 해도 된다는 점에 매료되어 방을 떠나지 못하는 것인데, 이는 백룸이 수수께끼일 뿐 정답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가 변화해야 하는 이유는 어딘가에 있는 정답에 가까워지기 위해서이다. 그러나 백룸의 세계에 있는 것들은 가치평가를 초월해서 그냥 그 자리에 있다. 어느 날 우연히 그곳에 흘러들어 온 인간이 방 하나하나를 돌아다니며 닥치는 대로 의미를 부여하려 할 수는 있겠지만, 그전까지 모든 것은 앉아 있든, 서 있든, 살인을 하든, 고장나 있든, 아무것도 안 하든 평등한 사물로서 존재한다.

 영화에 나온 장면들은 카메라로 찍은 기록들이 흔히 그렇듯 무한하게 뻗어 있는 세계의 극히 일부만 포착한다. 내면 세계를 주제로 던진 바람에 계속해서 인간의 심리에 초점을 맞추고 이것저것 생각하게 되긴 하지만 이야기가 끝났다는 느낌도 어떤 사실이 밝혀졌다는 느낌도 없어서 좋았다. <백룸>이라는 영화를 만들기로 했으면 감독이 달성해야 하는 일차적 목적은 유한한 화면에 무한한 세계를 구현하는 것일 텐데 그 점에 있어서 케인 파슨스는 나름대로 괜찮은 돌파구를 찾은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