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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카기 아키미쓰 <문신 살인사건> 리뷰

니라잡채양념 2025. 7. 28. 14:54

 <문신 살인사건>을 읽었다. 초반에는 속도가 잘 안 나서 읽다가 꾸벅꾸벅 졸았는데 여느 추리소설이 그렇듯 어느 지점을 넘기고 나니 단숨에 결말까지 읽을 수 있었다. 1951년 소설이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비슷한 시대여서 그런지 요코미조 세이시 작품을 읽을 때 느꼈던 특징들이 그대로 들어 있었다. 장엄한 태도로 앞날의 비극을 예고하는 편집자적 논평이라든가. 전후의 혼란을 투영하는 듯 음울한 배경 설정에다 기괴하고 민속적인 분위기. 우연의 일치의 극적인 활용. 추리소설에 대한 지식이 얕아서 이런 작법을 정확히 누가 먼저 유행시켰는지는 모른다. 다카기 아키미쓰가 요코미조 세이시의 후발 주자인 것으로 알고 있기는 하다. 읽고 있으면 한편으로는 작가의 자의식과 오만이 문체에 너무 묻어나서 꼴불견이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특유의 전근대적인 정서가 맛깔나게 느껴지기도 한다. 따지자면 내 취향은 이보다는 세련된 쪽이지만 그건 내가 현대인이라서일 것이다.

 트릭은 어렵지 않다. 초반부터 대강 이러저러하겠거니 짐작할 수 있는 트릭이다. 작가가 함정을 설치한 부분이 다소간 허술하게 넘어간다는 티가 나기 때문에 50% 정도는 일찍 맞출 수 있으나 디테일하게 파고들면 헷갈리는 부분들이 있다. 하지만 군더더기 없으며 당대에는 나름대로 획기적인 것이었으리라고 생각된다. 나는 누구도 예상 못할 어마무시한 아이디어에만 좋은 점수를 주는 타입은 아니기 때문에 탐정이 본격적으로 추리를 피로하기 전에 내용을 예측하기는 했어도 꽤나 멋지다고 느꼈다. 무엇보다 괜찮은 소재를 골랐기 때문에 작품이 준수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노리즈키 린타로의 <잘린 머리에게 물어봐>도 그랬지만, 소재 자체가 기발하고 생각할 거리가 많다면 설치된 트릭은 설령 평범한 레퍼토리라도 완전히 새롭게 다가오는 법이다. 좋은 소재를 고르고 자료조사를 열심히 한 작품은 좋다. 작품 해설에 따르면 다카기 아키미쓰는 원래부터 문신이라는 소재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는데 그만큼 고찰을 섬세하게 한 것 같다. 문신이 대중적인 패션으로 널리 받아들여진 것이 최근의 일이라 그런지 문신에 상당한 역사적 두께가 있으리라는 생각은 미처 하지 못했다. 우리가 흔히 고대 부족 사회 사람들을 생각할 때 연상하는 이미지가 얼굴에 얼룩덜룩 문신이 뒤덮인 모습인데도 말이다. 야쿠자가 하고 다니는 이레즈미가 어엿한 일본 전통 문화의 일부라는 생각도 해보지 못했고 문신이 예술적 가치를 지닐 수 있다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그러나 작품에서는 문신의 이런 다양한 면모를 세심하게 설명한다. 그런 부분이 작품 곳곳에 섬뜩한 생기를 불어넣어 준다. 하지만 문신을 한 여성을 묘사할 때의 페티시적이고 대상화적인 태도는 역시 싫다. 이거야말로 이야미스라고 느껴진다. 그래도 그런 부분 역시 어느 정도 개연성을 불어넣는 장치라는 점에서 납득할 만하므로 요코미조 세이시에 비하면 양반이지만.

 이하의 내용에는 <문신 살인사건>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다. 보통이라면 우회적으로 쓰겠지만, 작품의 트릭에 대해 하고 싶은 말이 있기 때문에 트릭을 모두 밝힐 것이므로 열람에 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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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품의 서두에서는 에도 시대부터 이어진 문신의 역사와 예술성에 대한 찬미적인 설명과 함께 어느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문신을 두른 몸통 가죽에 독자의 이목을 집중시킨다. 훌륭한 문신사가 남긴 정교한 문신은 그 자체로 하나의 예술 작품이라 보아도 무방하나 사람의 몸에 새겨져 있는 것인 만큼 오래도록 남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생전에 원주인이 동의한다는 조건하에 시체의 가죽을 벗겨 보관하는 방식으로 전해져 내려오는 문신이 있는데, 그중 이 작품의 소재가 되는 것은 어느 여성의 등에 문신사 호리야스가 새겼던 걸작 <오로치마루>이다. 오로치마루란 이무기를 부리는 전설의 요술사로, 에도 시대 후기에 간행된 <지라이야 설화>에 등장하는 3인의 요술사 가운데 하나다. 이 오로치마루 문신을 새긴 여성은 1946년 여름 있었던 참혹한 연쇄 살인사건에 휘말려 목숨을 잃은 인물이었다.

 간과하기 쉽지만 이 첫 번째 장(章)은 서술 트릭을 구사하고 있는데 이 공들인 기교는 흡사 <애크로이드 살인 사건>이나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의 첫 번째 장을 연상케 한다. 처음 읽으면 이 부분의 역할은 문신을 예술적으로 바라보는 시선을 소개하여 작품에서 문신에 탐닉하는 수집광 하야카와 박사의 집착적 태도에 대한 정당성을 부여하고, 어떤 연쇄 살인 사건이 벌어졌는지 독자의 궁금증을 유발하는 데서 끝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전지적 서술자 입장에서 사건을 해설하면서 독자에게 하나의 편견을 심어 주고 있는 것이다. 이 부분이 사실은 다소 허술한 작품의 핵심 트릭을 가동시키는 신의 한 수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나는 이 작품을 통틀어서 이 첫 번째 장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뒤이어 장면은 1946년 도쿄에서 열렸던 문신 경연대회로 넘어가는데, 훌륭한 문신을 몸에 새긴 각지의 남녀들이 옷을 벗어 아름다움을 뽐내고 겨루는 꽤나 기괴한 경연이다. 이 대회의 여왕은 앞서 이야기된 <오로치마루> 문신을 새긴 여성, 노무라 기누에였다. 그는 호리야스의 세 자녀 가운데 둘째 딸로, 대회를 계기로 주인공 미쓰시타 겐조를 알게 되어 그와 하룻밤을 보낸 후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해준다. 사실 호리야스의 삼남매는 절대 한 사람에게 새겨서는 안 된다는 세 개의 문신을 나누어 새기고 있다. 호리야스는 기누에의 오빠 쓰네타로에게 두꺼비 요술사 <지라이야>를, 쌍둥이 여동생 다마에에게는 민달팽이 요술사 <쓰나데히메>를 새겼는데 이들은 가위바위보처럼 셋이 모이면 서로가 서로를 죽여버린다고 해서 문신사 사이에서는 공존해서는 안 되는 금기라는 것이다. 기누에는 미쓰시타에게 자신들이 나온 세 장의 사진을 보여주고, 다른 남매들은 전쟁통에 일찍 죽어 버렸고 문신의 저주에 의해 자신에게도 위험이 닥칠 것 같다며 미쓰시타를 불러낸다. 그러나 도착한 미쓰시타가 발견한 것은 일본 가옥의 욕실에 쓰러진 기누에의 얼굴을 한 토막 시체로 그중 몸통의 <오로치마루>가 절단 나 사라져 있었다.

 추리소설의 문법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여기까지의 줄거리만 보고도 쉬이 예상할 수 있듯 이 작품은 시체 바꿔치기 트릭을 사용한다. 미쓰다 신조의 <잘린 머리보다 불길한 것>에서 추리소설가 에가와 란코는 머리 없는 시체 사건을 나누는 11가지 분류를 소개하는데, 그중 하나는 신체에 나타난 두드러진 표식을 숨기기 위해 시체를 절단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대체로 이론상으로만 고려되는 가능성이다. 보통 등장인물이 특이한 신체적 표식을 가진 것에 개연성을 부여하여 트릭을 만들어내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문신이라는 소재를 차용하는 것은 이런 난관을 상당히 세련되게 극복하는 방법이라 할 수 있겠다. 문신이 담긴 몸통을 가져간 이유가 무엇일까. 문신의 아름다움에 탐닉하여 숨겼다는 것은 너무 일차원적인 생각이다. 어떤 문신이 새겨졌는지를 모르게 만들려는 것이 다음으로 떠오르는 후보다. 그러나 죽은 것이 <오로치마루>를 새긴 기누에가 아니라 <쓰나데히메>를 새긴 쌍둥이 여동생 다마에임을 숨기고자 했다는 가설은 작품 속에서 일찍이 기각된다. 기누에가 건넸던 사진 속에서 다마에는 팔 위까지 커다란 문신을 새겼는데 발견된 시체에서 그 부분은 문신 없이 깨끗했기 때문이다. 이후 죽은 것이 다마에가 아닌 기누에임은 계속 작품 속에서 기정사실처럼 취급된다.

 그러나 해답은 사고를 한번 더 비틀어야 찾을 수 있다. 기누에가 미쓰시타에게 보여주었던 사진은 사실 가짜였다. 다마에의 사진이라고 주었던 쓰나데히메는 진짜 문신이 아닌 피부에 그린 그림에 불과했던 것이다. 잘 아는 사람이 아니고서야 알아볼 수 없는 차이였다. 그러니 문신이 담긴 몸통을 가져간 이유는 신체에 나타난 두드러진 표식을 숨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런 표식이 없음을 숨기기 위해서였다. 다마에의 몸통은 깨끗하다. 이를 비밀로 하기 위해 몸통은 사라질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기누에는 살아있었고, 사건의 공범이었지만, 작품 말미에 그와 공모하여 연쇄 살인을 일으킨 진범에게 총을 맞아 살해당한다. 결국 기누에의 오로치마루 문신은 일련의 사건 끝에 온전히 남으며 기념으로 몸통 부분만 잘린 가죽이 보관되어 전시된다. 여기가 서술 트릭이 작동하는 지점이다. 첫 장을 읽고 독자는 오로치마루 문신을 새긴 이와 연쇄살인의 시초로서 몸통 없이 발견된 여자가 동일인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그렇기에 다마에의 문신이 더 크다는 이유로 다마에 피해자설이 중간에 기각될 때 별 의심 없이 동의하게 된다. 죽은 것이 기누에임은 이미 작가와 합의한 부분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멋진 심리 트릭이었다.

 이러한 기교에 더해 문신이라는 소재가 가진 흥미로운 속성이 트릭에 한 겹의 견고함을 더한다. 문신은 영원하면서도 찰나적이다. 몸의 한 부분에 문신을 새긴다는 것은 돌이킬 수 없는 흔적을 남기는 것이다. 그것은 쉬이 지워지지 않고 낙인처럼 소유자를 따라다닌다. 사실 한때에는 실제로 문신이 낙인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문신을 한 여성 캐릭터는 여성의 무결함에 대한 사회적 요구와 배치되기에 좋지 않은 시선이 따라붙기도 하고 페티시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현대에도 많은 사람들이 어릴 적 철없이 새겨 넣은 문신을 후회한다. 다른 것으로 덮거나 지우려 애써도 온전히 사라지지는 않는다. 그러나 소유자가 사라지면 문신은 사라진다. 문신을 하고 죽은 사람이 땅에 묻힐 때 문신도 땅에 묻히며 그것은 곧 썩은 살점들과 굳은 혈액과 함께 흙으로 돌아간다. 일반적으로는 그렇다.

 그러나 이 작품에서는 그 두 가지가 뒤집힌다. <쓰나데히메> 문신은 소유자와 불가분의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찰나적이다. 그것은 바늘로 새겨 넣은 것이 아닌 가짜이기 때문에 순식간에 지워진다. 모두가 문신이 빼곡히 그려진 사진 속의 신체가 영원히 그 주인을 따라다닐 것이라고 예상했으나 그것은 착시에 불과했다. 그러나 <오로치마루> 문신은 소유자와 함께 죽지 않는다는 점에서 영원하다. 기누에는 죽어 우리 곁에 없지만 문신은 예술 작품으로서 우리 곁에 남는다. 작품 초반부, 아직 대외적으로도 살아 있을 무렵의 기누에는 <사람은 죽어 가죽을 남긴다>라고 농담한다. <호랑이는 죽어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 이름을 남긴다>라는 속담을 뒤집은 것이다. 그는 실제로 가죽을 남겼다. 그러나 사람답게 이름을 남기지는 못하고 오로치마루 문신을 한 어느 여성이 되었다.

 어떤 면에서 문신의 속성은 추리소설에 나오는 범인의 죄를 연상케 한다. 덮고 감추려고 애를 써도 영원히 소유자를 따라다닌다는 점에서. 죽어서라면 해방될 수 있을 것 같지만 꼭 그렇지도 않다는 점에서.

 여성임에도 거리낌 없이 커다란 문신을 온몸에 새길 만큼 대범하고 도발적인 여자로 묘사되는 기누에는 트릭을 구사해 동생을 죽였다. 범행 동기는 연인이 유산을 상속받게 하기 위해서였으나, 겨우 그런 것 때문에 동생을 죽인다는 것은 사실 지나치다. 작품 속 탐정은 후반부에 유력 용의자로 몰렸던 하야카와 박사, 그리고 철통 같은 알리바이를 지니고 있던 진범과 각각 장기를 두며 두 사람의 성향을 탐색하는데, 이 장면은 에르퀼 포와로가 용의자들의 브리지 게임 전적을 토대로 범인을 추론해 내는 <테이블 위의 카드>의 추리를 떠오르게 한다. 장기에서 과감한 승부수를 던지는 도박사적 성향이 대담한 범죄를 계획하게 했으리라고 추론하는 탐정의 심리 분석은 그럴듯하고 납득할 만하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공범 기누에의 심리에 대해서는 너무나 실망스러운 설명밖에 주어지지 않는다. 동생에 대한 질투나 기누에의 여러 가지 성격적 특성을 언급하다가 여자의 마음은 알기 어렵다는 식으로 어물쩍 넘어가 버릴 뿐이다. 이 부분을 옥에 티라고 느낄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사건 개요만 보면 기누에의 역할이 상당히 작위적이고 이상하기는 해도 의외로 기누에라는 캐릭터가 개연성을 해친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기누에가 그토록 자랑스럽게 여기는 문신과 그의 범행에 닮은 데가 있기 때문이 아닐까. 죽을 때까지 따라붙는 예술적인 불순물을 동경하며, 그로 인해 손가락질받더라도 개의치 않을 사람이라면 충분히 이런 살인을 저지를 수도 있을 것 같다.